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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Han Story/Family

율리아 빌리아르(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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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의 이름이 지어진 원인이자 수호성인인 율리아 성녀.
수호성인처럼 우리 율리도 남을 배려하며 사는 아이가 되길 바란다.
  • 성인명 율리아 빌리아르(Julia Billiart) 
  • 축일 4월 8일
  • 성인구분 성녀 신분 설립자
  • 활동지역 나무르(Namur)
  • 활동연도 1751-1816년
  • 같은이름 줄리아, 쥴리아

부유한 농가 태생인 성녀 율리아 빌리아르는 프랑스 북부 피카르디(Picardie) 지방의 보베(Beauvais) 교구에 속한 퀴비이(Cuvilly)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마리아 로사 율리아(Maria Rosa Julia)로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늘 신앙생활에 특별한 관심을 보여 왔는데, 특히 병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열심이었다. 그녀는 신비스런 병으로 마비되어 걷지 못하였고, 혁명 정부에 선서한 사제들을 반대하고 또 도망을 다니는 사제들을 숨겨준 일들이 정부 당국에 알려지자 자신도 몸을 숨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얼마동안 몇몇 친구들과 더불어 아미앵(Amiens)에 머물렀다. 후일 그 친구들이 그녀가 수도회를 설립하였을 때 초기 회원들이 되었다. 그녀는 여기서 '신앙의 사제회' 원장 신부인 바랭(R. P. Varin) 신부를 만났다.

   1804년 성녀 율리아는 자작 부인 프랑수아즈(후에 수도명을 요셉이라 함)와 함께 아미앵 교구장의 후원과 바랭 신부의 지도하에 노트르담 수녀회를 설립하였다. 이 수녀회는 가난한 어린이들의 종교교육과 신앙교사들의 훈련 및 여성들의 그리스도교 교육에 헌신하려는 목표로 설립되었다. 그들은 고아원도 개설하였다. 그리고 수녀원이 설립된 해에 성녀 율리아는 아미앵 선교 도중 앙팡탱 신부가 9일 기도를 바친 후 자신에게 걷도록 명했을 때 기적적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실로 22년 만에 걸음을 걷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바랭 신부가 떠나고 그의 후계자로 노트르담 수녀회의 고해사제로 임명된 신부가 이 수녀회에 대하여 반목하는 처지로 돌변하자, 아미앵의 주교는 1809년 내에 성녀 율리아로 하여금 아미앵 교구를 떠나도록 명하였다.

   그래서 성녀 율리아는 수녀회 모원을 벨기에 남부, 프랑스와 국경을 이루는 나무르로 이동하였다. 물론 그 사건은 나중에 무마되었지만 그녀는 모원을 그곳에 그냥 두었다. 그녀는 여생을 수녀회의 확장을 위하여 동분서주하였으며 15개의 수녀원이 세워지던 1816년 4월 8일 과로와 노환으로 나무르에서 운명하였다. 그녀는 1906년 5월 13일 교황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시복되었고, 1969년 6월 22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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